22. 암스테르담 





네덜란드(Netherlands), 헤이그(Den Haag) 옴니베르섬 극장(Omniversum) 근교 레스토랑

 

 

 



유럽 최초의 옴니맥스 스타일의 대형 스크린 극장으로서, 40여 개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향과 천장 돔에 설치된 스크린의 영상 속에 빠져들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된다. 우주선의 출발 모습, 별자리, 오로라, 원시로의 여행, 바닷속 여행 등 공상 과학의 세계를 담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상영 시간과 프로그램을 미리 확인하고 출발한다. 옴니베르섬 극장 근교 레스토랑은 모두 비어 있었다. 대원그룹 총수 서수철 회장과 조이델 건축회사 대표 강진형 대표가 은밀히 회동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아예 통째로 레스토랑을 빌린 참이었다. 정종과 스시가 오가고 음식이 다 오고가고 완전히 문이 닫히자 먼저 술잔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은 건 서 회장이었다. 분명히 말했지.

 

 

 

 

 

 

 

 

 

 

이 프로젝트에서 서은재 손 떼게 한다고. 이게 그거야? 이 프로젝트가 단독 서은재 제작이라고 이름이 안 박힌곳이 없어. 심지어 레이체 건축회사에서도 조이델 서은재한테 전부 지분 넘긴다고 발표했다며?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내가 이렇게 직접 강 대표까지 만나러 와야 할 일이냐고. 이런 일은 강 대표 선에서 알아서 정리했어야지. 자신 있다고 했잖아. 서은재 정리하는 건 나한테 맡겨달라며. 이게 맡겨달라고 한 결과인가? 내가 그 동안 강 대표에게 들인 정성이 얼만데 이걸 이런 식으로 갚아.

 

조이델 대박났으니 이제 나몰라라야? 서 회장의 닦달에 강 대표는 할 말도 없었다. 조이델의 성과는 곧 서은재의 성과이기도 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도대체 얼마나, 어떻게 준빌 해온 건지 이번 작품은 서은재 이름 석자만 널리 알려지고 있었다. 사표를 던질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준비를 잘 해왔는진 몰랐는데 강 대표가 봐도, 서 회장이 보기에도 준비에 흠잡을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그저, 철두철미하게 준비한 성과가 대박이 난 것 뿐. 



" 뭐라도 흠이 있을 거 아냐. 그 만나는 남자도 있다며. 그쪽이라도 파 보든가. " 


" 그건 파봤자 우리 얼굴에 침뱉는 거 밖에 안 됩니다. 그러는 서 회장님은, 내가 몇 번이나 연락했잖소. 이번 프로젝트 승인하지 말라고 연락을 얼마나 했는데.."


" 연락이라니. 갑자기 잘 지내다 조이델 프로젝트로 서은재 들고나와 내 뒷통수 친 게 누군데 사전 연락은 무슨. "


" 아니 댁으로 연락까지 했는데 모르신단 말이우? "


" ......집으로 연락을 했다고? "



서 회장은 더 의아한 얼굴로 강 대표를 쳐다보았다. 중간에 몇 번이나 강 대표가 연락을 했지만 그때마다 집에 있던 수완이 이를 숨겼다는 걸 알 리 없었다. 지금도 가족들과 식사하러 나온 자리에 잠깐 시간을 내서 온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막아요.

 

서 회장의 말에 강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프로젝틉니다. 애초에 투자자로 왜 대원그룹 손을 들어줬는데 이제와서 막지 못한게 누군데요. 중간에 스포일드 하라고 일부러 투자자로 넣어줬더니 대원그룹도 이번에 덕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프로젝트에서 전부 손을 떼게 하라고 하면 손해가 얼마인지나 아세요? 그리고 그 손해를 대원그룹은 다 감당할 수 있구요? 여기서 엎어지면 손해는 우리보다 그쪽이 더 많을 텐데. 프로젝트가 엎어진다고 해서 서은재가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프로젝트가 대박이 난다고 해서 당장 서은재가 대원그룹의 상속녀가 되는 건 아닐텐데요. 강 대표의 말에 서 회장이 발끈하여 책상을 내리찧었다. 상속은 무슨! 내가 20년간이나 이끌어 온 회사야. 내가 대원의 주인이야. 감히 누굴 넘봐! 

 


" 이번 프로젝트는 포기하시죠. "


"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나 있나, 강 대표는..? 모든 이미지에 그놈의 가족사진이 들어간다고, 당신 누나와 매형의 사진이 찍힌! "


" ...한번만 더 매형 소리 한번 아무리 서수철이라고 해도 용서 못해. 한번만 더 지껄이시지. " 



상속과 대원그룹이 서 회장의 발목을 잡는 일이라면 죽은 서대식 회장을 거론하는 것은 강 대표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끝까지 손을 잡는 방법 밖에 없었다. 곧 시사회 전이니까 그 자리에 서은재를 못 나오게 하는 방법도 있죠. 

 

어짜피 사람들은 등장하는 사람만 기억할 테니까. 서은재가 누군지는 금방 잊어버리게 될 거요. 강 대표의 말에 서 회장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이 다시 와인잔을 부딪히는 사이에 문틈 사이로 열린 공간이 있다는 것은 두 사람은 승자의 여유로운 미소에 취해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문틈 사이로 겨우 몸을 숨겼던 수완은 숨을 쉬기 위해 겨우 문틈 사이로 빠져나와야 했다. 이제 확연해졌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버지가 서은재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 다른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서은재가 대원그룹의 진짜 상속녀라는 소리가 신문과 뉴스를 도배하고 있었다. 서은재가 진짜 상속녀라면 다시 회사를 되돌려주면 되는 일 아닌가? 왜 저렇게 미워하시지.

 

아버지가 답답해진 수완은 휴대폰을 만졌다. 반대편 룸에서는 자신을 극도로 미워하는 양어머니와 이복 형이 맛있는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애초에 거긴 더더욱 수완이 낄 자리가 아니었다. 아예 양어머니인 고 여사는 돈을 얹어주며 밖에 나가서 알아서 먹고 오라 한 터였다. 고급스럽고 호화로운 만찬이 즐비한데 수완은 여기가 낄 자리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말해준 게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여전히 수완은 허름한 교복 차림이었다. 나가서 보면 대원그룹의 둘째 아들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할 터였다. 수완은 자신이 아버지의 핏줄이지만 어머니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눈치로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눈 대화를 통해 얼핏 들었지만 모른 척 살았다. 그래도 아버지 아들이니까,

 

 

 

 

 

 

 

 

 

 

 

어머닌 자신을 키워주신 소중한 분이니까 착하게 보답하는 게 맞다 여겼다. 하지만 늘 다정하고 따뜻하던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요즘 발견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감정적으로 보면 무조건 아버지 편을 드는 게 맞았다. 하지만 아무리 가슴으로 느끼려 해도 머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하는 방법은 정당치 못한 방법이야. 그리고 아무리 부정하려 애써도, 

 

은재 누나가 잘못됐다고 생각이 들질 않는걸. 지난 번에도 아버지가 은재를 막으려는 걸 몇 번이고 도와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재를 막으려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반란이었다. 수완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아버지가 알면 어떤 반응일지도 뻔한 일이었다. 강 대표의 전화 연락을 막은 건 수완이었다. 그것도 몇 번이나.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의 선택도 자신의 의지로 한 일이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를 배신하는 일이라는 걸 똑똑한 수완이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반드시 은재가 다칠 건 뻔했다. 복도를 서성이던 수완은 휴대폰을 다시 열었다. 몇달 전에 받아 둔 문자가 눈에 띄여서였다. 

 


새 메시지 01 

서은재 씨의 파트너입니다. 
혹 서은재 씨 신변에 일이 있을 법한 일이 있다면 꼭 연락 주세요. 
긴급한 일일 때 도와드리겠습니다. 

차 도 일 

 

 


문자를 계속해서 곱씹어 보던 수완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켜야 해. 
그냥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그냥 지켜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통화 신호음이 울리고 그라베처럼 정중한 목소리가 울리자 수완은 결심이 선 듯 눈을 똑바로 떴다. 

 


" 안녕하세요. 서 수완입니다. " 

 










* * * * * * * * * * * * * * * *
네덜란드(Netherlands), 헤이그(Den Haag) 마두로담(Madurodaum) 근교 커피하우스

 



네덜란드의 유명 관광지를 실물 크기의 1/25로 축소한 모형을 전시해 놓은 미니어쳐 타운. 2천여 평의 부지 안에 암스테르담의 담 광장을 비롯하여 왕궁, 스키폴 공항, 헤이그의 비넨호프 등 교회, 왕궁, 운하, 풍차, 유원지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야간에는 5만여 개의 조명이 각각의 모형에서 빛을 내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시사회가 끝나고 은재는 주변에서 몰려드는 인터뷰 요청과 성공에 대한 기자들의 요청으로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조이델과 레이체의 합작 프로젝트는 성공, 아...완벽하게 성공하였다. 성공이라는 말 밖에는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예상하긴 했지만 그야말로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 가운데 이 프로젝트를 전두지휘한 서은재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강 대표와 서 회장이 우려하던 것이 드디어 터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인터뷰 요청에도 불구하고 마두로담 근처의 커피숍에 당도한 은재는 눈 앞에 휠체어에 앉아 있는 도진을 마주 보았다. 도진은 음료를 받고 나서 다시 은재를 쳐다보았다. 성공..한 것 축하해요. 내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칭찬도 받겠지만 그래도 꼭 만나서 얘기해 주고 싶었어요. 고개도 못 들고 얘기하는 도진의 떨리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던 은재의 눈빛은 차갑게 식기만 했다. 입에 발린 그런 칭찬하려고 불렀어요? 

 


" 시간 낭비 아니었을ㄲ..."

 

" 서수철 회장을 잡으려면 방법은 하나 뿐이예요. "


" ....? "


" 다섯 팬던트가 모두 모여야 해요. 그래야 대원그룹을 되찾아요. 그럴려면, 동생들을 모두 찾아야겠죠. "

 


도진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은재가 눈을 크게 뜨면서 자리에 도로 앉았다. 강 대표는 오랫동안 날 협박해왔죠. 그와 손잡았던 건 첫번째는 아버지의 회사를 지켜야 했고, 두 번째는 도일이 때문이었어요. 어린 동생을 지킬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었는데 그 짐승만도 못한 놈이 내 동생과 내 아버지 회사 둘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었으니까. 약점이 있다는 건 불공평한 일이예요. 그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도 잘 살았냐고는 묻지 마세요. 다행히 이런 형벌도 받고 있는 거니까. 도진이 씁쓸한 눈으로 휠체어를 가리켰고, 은재는 그 순간만큼은 눈이 흐려질 수 밖에 없었다. 도일이가 대학에 가면서 에세이를 썼는데, 


제목이 정직하고 올바른 내 영웅, 우리 형..이라는 제목이었어요. 그녀석 눈엔 부모님도 없이 그놈 혼자 건사한 형이 불쌍해 보였을 거예요. 그걸 보는데 괜찮을 거라고,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마음이 다시 발목을 잡더군요. 그때부터 시작했어요. 

 

 

 

 

 

 

 

 

 

뿔뿔이 흩어진 당신 동생들 찾는 일. 도진의 말에 이때까지 추억팔이나 하고 있는 도진의 말을 듣고 있지 않던 은재가 눈을 똑바로 떴다. 당신도 찾았겠죠. 미치게 찾았을 거예요. 하지만 강 대표 감시 아래에서 동생들 찾기는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놈 회사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더 감시를 받았을 테니 불가능했을 거고요. 본격적으로 당신 동생들을 찾기 시작한 걸 강 대표가 어느 날 알았어요. 한번만 더 찾는 시늉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또 내 동생을 걸고 넘어지길래 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언젠가는 내 동생을 해꼬지 할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때 그랬죠. 이때까지 내가 한 일, 당신이 한 일까지 모두 합쳐 경찰서에서 해결보자고. 자수하겠다는 뜻, 그때 밝혔죠. 그렇게 말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 사고가 났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다리는 이 지경이었고 내 동생은 강 대표를 죽여버리고 조이델을 박살내겠다는 복수심에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고. 그 때부터 관뒀었어요. 아무리 내 죄책감이 먼저여도 내 동생의 안전보다 더 먼저일 수는 없었으니까. 도진은 말을 다 하고난 뒤 후련한 듯 눈을 내려감았다. 죄책감을 덜겠다는 거 절대로 아닙니다. 죄값 받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은재 씨에게는 도움이 필요해요. 적어도, 

 

 

 

 

 

 

 

 

 

그놈들의 동태를 알고 있는 누군가의 도움이. 도진의 말에 은재는 이를 악물었다. 난생 처음 듣는 얘기였다. 사죄하고 뒤늦게 반성하는 자에게 끝까지 모질 성격이 아니었다. 그 자들은 당신이 당신 동생을 찾는 걸 두려워해요. 모든 지분이 다 모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때까지 동생들을 찾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다 막아왔던 거구요. 이때까진 당신이나 나나 힘이 없었으니 아무리 동생들을 찾는다고 해도 아무 위협이 되지 않았겠죠. 도진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은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을 해버린 거로군요. 

 


" 이제는 은재 씨가 하는 모든 일이 위협으로 느껴질 겁니다. "


" .........."


" 부끄러운 얘기지만 하나는 기억해요. 쌍둥이 여자애들도, 당신 바로 밑의 남동생도, 모두 그 팬던트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요. 부모님이 생일을 직접 조각해준 거라 절대 몸에서 떼어내질 않았죠. 그 어린 나이에도 그걸 수호성인처럼 간직하고 있었어요. 내가 버렸던 그 순간에도. "


" ........!!! "


" 은재 씨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그 팬던트를 가족의 일부라 생각하고 간직하고 살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희망을 잃지 마세요. 절대로, 아직은 죽지 않았으니까. " 


" ..... "



꽤 오래된, 두툼한 서류봉투를 여럿 내민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년 한국인 출신 보육원을 온 세계를 이잡듯 뒤지고 다닌 납니다. 아직까지 그와 비슷한 인상착의를 가진 아이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어요. 그것만큼은 믿어도 좋아요. 

 

오랫동안 동생들을 찾아다녔다는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서류봉투의 껍데기가 바스러질듯 색이 변색되어 있었더랬다. 서류봉투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은재는 그제서야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은재가 봉투를 들고 일어나려 하자 도진이 그런 은재의 손을 잡았다. 얼마나 떨고 있었는지 손바닥이 온통 흥건한 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번 일 때문에 내 동생이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날 용서하지는 않는다 해도 도일이는, 두 사람 관계가 어찌 되어도 도일이만큼은 나와 다르다는 걸 믿어 주세요. 

 


" ........ "


"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그 녀석은 죄가 없어요. 죄가 있다면 나같은 못난 형을 둔 것 뿐..."

 


도진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눈시울이 젖어든 채로 은재를 쳐다보았고, 조용히 그의 형을 쳐다보던 은재가 먼 발치를 보듯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단 한번도 미워한 적 없어요. 


 

 

 

 

 

 




리노베이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어디든 이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가족을 테마로 한 굿즈는 절대 싫어할 사람이 없을 거라는 은재의 예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 초대박이었다. 부모님은 물론 나이가 제법 있는 연령층도 공략했고, 가족을 테마로 했지만 다양한 연령층을 공략한 굿즈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리노베이션 건물이 홍보하게 되면서 여기저기서 입점하고 사들이겠다는 선주문도 대기가 길다 못해 계속해서 문의전화가 오는 판이었다. 한국만 이럴진대 아시아며,

 

다른 지역과 암스테르담 상황도 비슷했다. 거기다 이번 프로젝트가 시작된 암스테르담의 본 스튜디오는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으며 공사가 끝나서 해산된 스튜디오는 각자 흩어졌지만 조이델과 레이체 본사에서는 이 프로젝트가 대박나면서 몰려드는 관심과 화제성으로 모든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더랬다. 이건 그저 여러 프로젝트 중 대박난 몇몇 건수와는 달랐다. 

 

 

 

 

 

 

 

 

 

 

이게 시작이었다. 그 화제의 중심에 서은재가있었다. 은재가 작고한 대원그룹 전 회장의 장녀라는 게 온 세상에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였지만 그것만큼은 막으려고 강 대표와 서 회장은 기를 쓰고 있었다. 몇몇 임원들은 은재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었으나 아직까지는 극소수인 듯 했다. 서 회장도, 강 대표도 이 프로젝트에 흠집을 내려 노력은 했으나 이미 그러기엔 일이 너무 커져 있었다. 거기다 조이델과 대원그룹 측에서도 부어놓은 투자가 막대하여 흠집을 내려 할수록 회사 얼굴에 침 뱉는 격이었다. 말하자면 회사 차원에서는 대박이 나야 하는 아이템인 동시에 은재가 잘 뻗어나가는 건 무조건 막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이 수많은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은재는 언론이나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아니, 않고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못하고 있다는 편이 더 맞을 터였다. 그것만큼은 서 회장과 강 대표가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이제 은재가 온 세상에 드러낼 때였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이었다. 은재는 강 대표가 언론에 은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사투를 벌일 시각, 홀로 외삼촌의 집을 찾았다, 은재가 찾아왔다는 말에 외숙모이자 강 대표의 부인인 윤 여사는 떨떠름하게 은재를 맞았다. 지금 생애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어야 할 아이가 아니었나. 하지만 윤 여사와 은재의 사이가 좋을리는 없었다. 사표 냈다는 얘기 들었다. 더 이상 그럼 이 집과는 영영 볼일 끝난 것 아니겠니? 넌 너 대로 갈 길 가면 돼. 

 


" 외숙모께 도움 청할 일이 있어서요. " 


" 니가 나한테? "

 


윤 여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은재를 쳐다보았고, 은재는 말간 눈으로 윤 여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이 프로젝트는 조이델과 레이체의 합작 프로젝트예요. 그리고 조이델의 지분 최종 결재권은 강진형 대표님께 있구요. 은재의 말에 윤 여사는 당연하지 않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은재는 하고 싶은 말이 있던 듯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 모든 전권을 제게 주세요.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 알아요. 저에게 솜털만큼의 양심이 있다면 제게 주시는 게 맞다 생각해요. 외삼촌은, 아니..강진형 대표님은 그 프로젝트의 전권을 가질 자격이 없어요. 제게 주세요. 너무 당당한 은재의 말에 윤 여사는 황당하는 듯 테이블을 탁 치고 일어났더랬다. 뭐 한 놈이 대신 성낸다더니 뭐 어디 맡겨놨니? 우리가 빚이라도 졌는데 빚 받으러 온 빚쟁이마냥 뭘 달래? 화를 내려던 윤 여사는 은재의 조용히 일렁이는 눈매를 보더니 이를 악물었다. 내가 내 남편 편 들지 어떻게 네 편을 들겠니. 너 정말 어떻게 됐어?

 


" 그걸 꼭 받아야겠어요. 원래 제가 이룬 거예요. 제가 해낸 거라구요. 외삼촌은 가질 자격이 없어요. "


" .........! "


" ...그 전권을 받아야 내 동생들을 찾아요. 제 동생들이 제게 어떤 의민지 외숙모두 이제 아시죠. 외숙모 집에 와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릇된 행동 한 적 없고 말씀 어겨본 적도 없어요. 그 불공평한 약속 사이에서 전 참고 또 참아 왔어요. 그래도 절 거둬준 두 분이었고 절 키워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예요. "


" 그래, 그런데 내가 어떻게, "


" 제 동생을 제게서 갈갈이 찢어 떼어놓으려고 한 악행이면 이유가 달라지죠. "


" 뭐 ? " 

 


황당해하는 윤 여사 앞에 녹음기 버튼을 누른 채 내려놓은 은재의 표정은 전혀 미동도 흔들림도 없었다. 

 


- 수고했소. 역시 우리 차 대표가 그릇이 크단 말야. 


- 이제 더 이상 이런 파렴치한 일은 하지 않을 거요. 다시는, 다신 절대! 


- ....


- 당신은 살아있는 조카들을 다 찢어놓고 하나는 보육원에 갖다 버리고, 아

직 열살도 안된 어린 애들을 멀리 해외로 도둑 입양 보냈어. 그게 사람이야?


- 엄연히 말해 내가 한 일은 아니지. 


- ....뭐요?


- 지환이를 보육원 앞 길거리에 갖다 버린 것도, 영신이와 재희를 해외 입양 브로커에게 넘긴 것도, 

수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은재에게 숨기도록 연락을 두절시킨 것도 모두 강 대표가 한 일이니까. 


- 당신이, 당신이 내 가족을 가지고 협박했잖아!!


- 증거 있소?


- 강진형!!!!!!!!


- 정확히 알아둬. 이 사실을 은재에게 발설한다면 당신 동생은 또다시 고통 속에 허덕이게 될 거야. 

절대, 은재가 동생들을 만나지 못하게 해야 해. 알아들어? 그것만 성사시켜 주면 당신은 다시 행복해 질 거야. 


- .....


- 그래야 우리 거래가 안전하게 성립되지. 안 그래요, 차 대표님..?



쨍그랑 - ! 

 


항상 윤 여사가 비싸다고 좋아하던 핀란드제 수제 찻잔이 테이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소리였다. 믿기 어려우시다면 증거를 가져올 수도 있어요. 어릴 때부터 모은 거라 셀 수도 없죠. 이 걸로 충격받진 않았어요. 그냥 확인사살일 뿐이었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동생들과 헤어져 암스테르담으로 온지 몇달 후에 알았어요. 외삼촌이 술에 취해 제게 용돈을 쥐어주셨을 때 하셨던 말이예요. 그냥 처음엔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하시는 거라 생각했는데 다음번 술에 취했을 때 또 그 소릴 하시더군요. 

 

 

 

 

 

 

 

 

가, 지환이를 거지와 깡패들과 마약범들과 킬러들이 득시글거리는 유럽의 어느 하렘 거리에 거지처럼 네 동생을 버리라고 시켰다, 고. 그리고 아직 열살도 안 된 네 동생들을 유럽에 팔아넘겼다고. 다음 술에 취했을 때도 또 그 소리를 하길래 녹음을 했어요. 은재는 조용한 눈에 눈물도 달지 않고서 윤 여사를 쳐다보았다. 오히려 충격받은 것은 윤 여사였다. 자신의 남편이 쓰레기라는 걸 인정하는 것만큼 힘든 것은 없었다. 안 그래도 강 대표가 자신을 유린했다고 목을 매 자살한 남편 회사 직원의 시신이 채 식기도 전이었다. 쉬쉬하면서 묻었지만 윤 여사도 알았다. 심지어 그 애가 타주는 커피도 마셔본 적 있어 기억이 났다. 옆모습이 언뜻, 아주 살짝 은재를 닮은 그 수습 인턴이었다. 저 혼자선 할 수 없어요. 외삼촌을 전부 다 배신하라곤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해달라고는 안 해요. 그냥 동생들만 찾을 수 있게 해 주세요. 

 


" 찾고 싶어요 외숙모...."


" ............ "


" 살았는지, 죽었는진 모르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는 희망으로 찾고 싶어요. " 


" ........."


" 그래야 돌아가신 부모님께 뭐라도 변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발요. "


" ........"


"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그래도 찾고 싶어요. 우리 지환이, 영신이, 재희...전부 다요. "


" ......."


" 도와주세요. 저 안 좋아하시는 거 알아요. 하지만, 하지만 제가 동생들을 찾고 싶어하는 절박한 마음은 아실 거라고 믿어요. "


" ........."

 


말을 꺼낸 은재의 눈에서 펑펑 눈물이 쏟아졌다. 외숙모는 아예 고개를 돌리고 서 있었다. 은재는 깊게 고개를 숙인 후 천천히 돌아섰고, 돌아선 은재의 등 뒤로 떨리듯 목이 메인 외숙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얼마나, 내가 뭘 어떻게 해주면 도와주는 건데. 윤 여사의 말에 은재가 놀란 듯 돌아보았지만 윤 여사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표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은재는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고개 들어. "


" ......"


" 앞으로 네 동생들 찾으려면 희노애락 다 겪어야 할 텐데 어디서 고개 숙여. 난 서은재를 비굴한 아이로 키운 적이 없다. "


" ......외숙모...."

 


은재의 울먹거리는 소리를 들은 윤 여사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떨리는 외숙모의 목소리를 들으며 은재는 느꼈다. 결심이 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 * * * * * * * * * * * * * *


- 전권을 서은재에게서 모두 뺏어. 그리고 모두 나에게 주게. 지금은 그길만이 살 길이야. 

 



서 회장으로부터 받은 최후 통첩이었다. 강 대표 역시 이에 동의했다. 어짜피 프로젝트를 시작한 쪽의 전권은 조이델과 레이체에 있었다. 레이체의 대표는 도진이었으나 강 대표는 도진의 약점을 잘 알고 있으니 도진을 밀어낼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도진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도일의 비서로부터 오는공식 답변은 너무 바쁘니 당분간 연락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애가 탄 강 대표는 자신의 지분부터 확보해 은재를 밀어낼 생각이었다. 지금 은재의 기세가 하늘 모르게 높아져 있지만 결국 조이델의 대표는 자신이었으니 아무리 은재라 해도 쉽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 계산했더랬다. 오늘 리노베이션에 대한 전권을 자신의 이름으로 하는 것에 동의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던 강 대표는 자신만만하게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하지만 모두 기다리고 있어야 할 임원들과 자신의 자리에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임원들은 그대로 앉아 있었지만 강 대표의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더랬다. 

 


" 회의는 이상 마치겠습니다. 그럼, 모든 전권을 윤지선 이사장님이 가지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

 


모두 찬성. 

 


윤 여사의 갑작스런 등장에 영혼이 탈탈 털리는 것 같은 강 대표는 눈을 부릅떴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전권을 왜 당신이, 아니 당신이 여기 왜 있어!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조이델의 대표는 나야! 내가 엄연히 여기 있는데 이게 무슨 도둑회의야. 

 

악을 쓰는 강 대표와는 달리 윤 여사는 침착하기만 했다. 회의 안건이 상정되는 건 이사회의 재가를 거친다는 건 기본 상식이죠. 모든 회의 안건이 이사장인 내 재가를 거치지 않는다는 것도 들어본 적 없구요. 리노베이션의 전권을 바꾸는 중요한 일에 서은재 실장이 빠져있는 것 자체 역시 논의가 있어야죠. 아무리 사표를 제출했다고 해도 아직 수리되지 않은 사표고, 

 

 

 

 

 

 

 

 

 

여전히 서 실장은 우리 조이델의 대표 디자이너예요. 서 실장을 제외시키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임원진들이 먼저 연락을 해왔더군요. 모든 홍보에 서 실장이 빠져있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구요. 윤 여사의 똑 부러지는 말에 강 대표는 분노한 얼굴로 임원진들을 노려보았지만, 임원진들은 강 대표의 시선을 피하며 윤 여사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있어서 대표님이 너무 과한 결정을 내리신다는 게 저희 임원들의 생각입니다. 서 실장이 이때까지 저희 조이델을 어떻게 이끌어 왔습니까. 


그리고 거의 무리수에 불과했던 이번 입찰은 누가 따냈습니까. 레이체와 협력하여 스튜디오를 열고, 디자인 하나부터 공사 마무리까지 불철주야 몸을 던져 이번 성공을 이끌어낸 주역인데 왜 서은재 실장이 모든 홍보에 빠져 있으니 지금 홍보를 레이체에서 다 하고 있구요. 이러다간 투자자들에게 모든 공을 다 뺏기게 생겼으니까요. 홍보에서 빠지고 제외되니 당연히 서 실장이 사표를 낸 것 아니겠습니까. 



" 이것들이..내가 이 회사 대표야. 감히 내 등 뒤에서 칼 꽂고 딴 짓을 해? "


" 거기다..지난번 수습 직원 성추문 사건도 아직 해결되지 않아 여러모로 대표님의 회사 경영 방침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


" 뭐가 어째?! " 


" 그래서 저희 임원진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두 동의했구요. "


" .......! "


" 프로젝트의 전권과 임시 회사 대표는 이사장님이시자 대표님의 부인 되시는 윤지선 이사장님께서 맡으실 겁니다. " 

 


전원 찬성. 

 


이때까지 추문과 폭력으로 얼룩져 모든 임원들과 직원들에게 안좋은 소문만 들끓었던 강 대표와는 달리, 정숙하고 우아한 이미지로 대외적인 명성이 높은 윤 여사에게 점수를 주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임원진 모두 전원 찬성이라는 이례적인 결과 앞에 윤 여사는 회의를 통해 당분간 전문 실무진을 통해 일을 처리할 것과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의 전권을 서은재 실장에게 일임한다는 이야기를 내놓았더랬다. 



 

 

 









" 쓰시죠. "


" 이게 뭐야. "


" 각서죠. 당신의 대표로서의 모든 전권을 윤지선 이사장님께 양도한다는. "


" ..........! " 



그날 오후, 그렇게 연락을 해도 받지 않던 도일이 직접 강 대표의 집무실을 찾았다.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 강 대표는 도일을 그런 표정으로 노려보며 이죽거릴 듯이 이를 으드득 갈았다. 지선은 그의 부인이었다. 30여년을 같이 산 부부였다. 분

 

명히 이 전권을 손에 넣으려고 은재가 수를 썼겠지만 오롯이 은재의 설득만으로 지선이 이렇게까지 다 일을 벌일 순 없을 것이었다. 이사회 소집, 임원들 설득, 만장일치의 찬성으로 갑작스런 대표 해임과 교체, 모든 전권을 지선에게 준다고 되어 있지만 지선은 전권을 위임받자마자 프로젝트의 모든 권한을 은재에게 넘겼다. 초등학생이라도 손바닥 뒤집기 하듯 다 알만한 이야기였다. 이건 은재로서도 쉽게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터였다. 사업 일에 능숙하면서 자신이 전권을 잡는 걸 싫어하는 누군가의. 강 대표는 불꽃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도일을 노려보았지만 도일은 공손히 인사하기는 커녕 고개를 빳빳이 들고 얇은 결재서류 봉투 하나를 책상 위에 탁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싸인하시오. 전권을 윤지선 이사장님께 양도한다는 확인 서류입니다. 제가 윤지선 이사장님의 전권 대리인이구요. 이 프로젝트를 같이 계획한 사람으로써 이사장님께서 특별히 부탁하셨습니다. 도일의 말에 강 대표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씹었다. 네놈이지. 



복수지. 네 형과 네 회사를 이렇게 만든 거에 대한 복수지. 최종 목표는 뭐야. 날 무너뜨리고 조이델을 삼키는 거겠지? 그렇게 호락호락 될 줄 알아? 아직도 조이델의 대표는 나,


허울뿐인 회사에 불과했다는 걸 누구보다 아실 텐데요. 그 허울 뿐인 종잇조각이나 다름없던, 맨몸뚱이에 불과했던 회사를 자기 몸을 갈아서 여기까지 데려온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서은재였습니다. 


닥쳐! 이 사기꾼 잡종같은 새끼야!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이때까지 다른 회사들을 먹고 갈취해왔듯, 당신의 편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아, 곧 검찰 조사도 응하셔야겠군요. 


흥.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십수년 전의 조카들 일로 발목 잡는다면 서울엔 수완이가 있어. 수완이가 있한, 은재는 나도 서 회장도 건드릴 수 없을 걸. 

 


야속하고 찢어죽이고 싶은 놈이지만 그 말은 맞았다. 지금 서 회장이 타격을 별로 입지 않는것도 그 때문일 것이었다. 수완이 있는 한 은재는 쉽게 대원그룹의 서 회장을 건드릴 수 없었다. 그리고 아직 대원그룹의 전신인 서 회장을 건드리기엔 미약한 존재였다. 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더 단단해져야 했다. 아직 은재의 힘으로는 대원그룹을 되찾을 수 없음은 맞는 말이었다. 도일은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런 강 대표를 노려보았다. 조카들 일이 아닙니다. 당신 때문에 목을 매고 자살한 수습 인턴의 가족이 당신을 강간 폭행죄로 고발했어요. 그리고 윤지선 이사장님께서 이혼 청구 소송을 내셨구요, 


또, 이때까지 회사에서 당신에게 폭언, 폭행 및 부당한 대우를 받던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소송 준비중입니다. 그 수많은 소송을 준비하려면 꽤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이젠 조이델의 대표가 아니니 혼자, 준비하셔야겠군요. 

 

 

 

 

 

 

 

 

 

 

 

 

 

 

 

당신을 든든하게 지지해주던 부인은 당신에게서 등을 돌렸고, 든든하게 지켜줄 것 같던 대원그룹의 서 회장은 아마..당신 전화를 며칠째 안 받고 있다죠? 도일의 일사천리와 같은 말 앞에 결국 강 대표는 눈을 부라렸다. 이게 끝이 아니야. 난 반드시 회사도, 그리고 은재도 찾아올 거니까. 서은재는 내가 키웠어. 넌 고작 몇 달 만났을 뿐이지만 나한테 은재는 가족이야. 


절대 은재를 포기하지 않는다. 은재는 내 꺼니까. 강 대표의 무시무시한 발언에 도일은 대답 대신 결재 서류를 펼쳐서 만년필을 으스러지듯 쥐어 강 대표의 손에 억지로 쥐어주었다. 싸인이나 해. 개자식아. 도일의 눈에서도 시뻘건 분노가 솟구쳤다. 

 

 

 

 

 

 

 

 

 

 

 

 

 

 

그리고 각서 써. 다시는 죽어서도 서은재 옆에 얼씬도 않겠다고. 변호사 선임할 돈이라도 구하려면 그렇게 해야 할 거야. 이런 유럽에서 땡전 한 푼 없이 사는 게 어떤 느낌인지 누구보다 네놈이 더 잘 알테니까. 도일의 마지막 말에 강 대표는 노려보았지만 도일은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며 집무실을 나섰다. 

 


완벽한 승리였다. 




 

 

 

 







* * * * * * * * * * * * * * * *


[속보] 조이델-레이체 리노베이션 합작 신드롬, 세계 건축학계에 혁명 
[대박] 리노베이션 공사의 혁신 주역 조이델-레이체 합작품을 이끌어낸 서은재 디자이너 

 



신문을 덮은 경유는 공항 대기실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예견된 결과였으나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지분은 원래 처음 시작했던 민우의 지분도 있었으나 경유는 민우의 지분 소유자로 지분도 모두 은재에게 주었다. 레이체의 소유권도 모두 은재에게 준 모양이었다. 자신이 없어도 이젠 도일이 은재의 곁에 있어줄 터였다. 신문을 접은 경유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암스테르담의 하늘이 예쁜 오렌지빛이었다면 서울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솜사탕 같았다. 



- 서울?


- 응. 나 수학여행 서울로 다녀왔거든. 이상하지. 한국 사람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다니. 근데 정말 좋은 거야. 

경복궁 돌담길을 걸었는데 딱 이맘때 사박거리는 낙엽 밟는 기분이 진짜 죽여. 


- 보통 L.A나 그런 화려한 도시 좋아했을 텐데. 서민제 진짜 성격 특이해. 


- 경복궁 돌담길에 가면 꼭 자기랑 같이 걸어볼 거야.


- 왜?


- 얼마나 행복한 기분인지 알 테니까. 온 세상을 다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 

 

 

 


공항 입구 앞에 서 있으려니 택시 한 대가 와서 멎었다. 트렁크를 택시에 싣고 탄 경유는 미소를 지으며 택시 기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능숙한 한국말에 능숙한 한국말이 되돌아왔다. 어디로 가세요? 택시 기사의 말에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경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경복궁 앞이요. 

 


그리고,
경유의 시간은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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